Current
나의 현재
2000년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나는 오랜 뉴욕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2005년 현재까지 서울에 머무르고 있다. 1985년에 한국을 떠나 16년만의 귀환이었다. 기대와 두려움 속에 서울로 돌아와 정림건축에서 한국의 건축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고, 2003년 사회로 나와 지금까지 쉽지 않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일에 포함되어 나를 표현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는, 언제부터인지 나그네처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세상의 아웃사이더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한다. 표류하고 있는 나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한국을 떠나게 될 것이다. 물리적인 ‘장소’의 변화이겠지만 나에게 ‘장소’라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유목nomad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고정된 어느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채우기에는 이제 무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의 현재
요즘의 사회는 혼재됨을 원한다. 하나의 결정체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2, 3개 정도의 각기 다른 요소들을 적절히 섞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요즘의 정서에 상응 할 수 있다.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물을 콜라쥬하는 것이다.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하이브리드hybrid, 프레그멘테이션fragmentation 등의 이름으로 도시의 풍경을 더욱더 다양하게 하고 있다. 과거의 고딕양식이나 바로크양식 등에서 목격했던 풍부한 장식들이 이제 인터내셔널 스타일, 포스트 모던, 디컨스트럭션 등의 움직임을 거치며 오늘에 와서는 디지털로 모든 것을 재편집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세기말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현상은 때로는 미학적으로, 때로는 기술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흥분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그러한 움직임이나 현상들을 관망하고 비평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의 현재는 무엇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추구하고 있는 그 무언가는 있는 걸까? 우리가 미래를 계획하며 현재를 준비하는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는 걸까?
반성
2003년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의 아들 내쓰니엘 칸Nathaniel Kahn이 제작한 기록 영상물 ‘나의 건축가My Architect’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오래 전부터 나에게 루이스 칸은 건축가로서가 아니고 사상가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의 생각의 깊이와 방향은 범인들에게는 가질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루이스 칸의 인생이나 그의 자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루이스 칸의 사생활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내쓰니엘 칸이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가며 아버지의 원망에서 시작해서 그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정은 아들을 두고 있는 나에게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루이스 칸의 건축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그의 건축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우리의 현재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 열심히 앞만 보며 달리는 중에 정말 중요한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나의 자아에 대한 반성과 한국건축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았다. 루이스 칸이 51세에 로마를 방문하여 건축방향의 일대 전환기를 맞는 모습은 너무나 조급하게 자신의 건축관을 확정지으려 하는 요즘의 건축가들과는 차이가 있다. 학교 강의실에서 벽돌을 들고 벽돌과 대화를 하는 모습 또한 건축의 어느 한 부분도 소홀이 하지 않았던 루이스 칸이 건축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를 새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대처하고 있을까? 우리가 만들어 내는 건축물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얼마나 고려했는지. 그러한 시각에서 우리의 건축은 제자리 걸음을 거듭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룰 수 없는 것은 이제 자각하고 미지의 세계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건축은 진화해야 한다. 진화는 변형, 변경이 아니다. 변태metamorphosis를 통해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부여받는 나비처럼 벗어나야 한다. 그 과정에는 많은 시련과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근본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진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건축을 교육하는 학교에서, 건물을 잉태하는 건축사무소에서 진화의 가능성은 꿈틀대고 있다. 단지 그 결실의 과정에서 탈색되어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개선
우리의 학교 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학교가 5년제 건축과로 변경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교수진이나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교수진의 전문화도 이루어져야 한다. 전공과 상응하는 과목을 강의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호텔에 가본 적은 없지만 호텔설계는 문제없이 할 수 있다고 공허한 외침을 거듭하는 셈이다. 각 학교의 색깔도 정해야 할 것이다. 모든 학교가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교육한다면 학생들은 졸업 후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색깔을 찾아 헤메기 마련이다. 미학적 건축교육을 진행 중이거나 기술적 특수성을 강조하며 교육하는 식의 학교는 찾아볼 수 없다.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설계사’의 교육을 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건축가로서의 학문과 교양을 쌓아가야 할 학생들이 설계사무소 직원의 역할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손으로 모든 것을 배우려 하는가. 가슴으로 두뇌로 느끼고 배우고 기억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몇몇 교수님들이 고군분투 하며 미래의 건축가 양성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지만, 앞으로 10년 후에 한국의 건축은 국제적인 수준의 건축가를 배출할 수 있을까? 우리의 교육이 단기적인 공급과 수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국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 기술력으로 인정 받고 있다. 황우석박사의 의학적 발견 또한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의 건축은 왜 우물 안 개구리의 형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나의 과거
오래 전 뉴욕공대를 졸업하고 실무경력을 하루하루 쌓아가던 시절, 나에게는 건축적 미학이나 철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일과는 도면작업과 법규검토 그리고 간혹 있는 현장방문이 전부였다. 건축을 기술적인 학문으로만 알고 있었고 내 인생의 목표는 자격증을 취득해서 나의 사무소를 시작하는 것, 많은 건물을 설계하여 경제적 안정을 갖는 것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성공한 건축가의 미래의 모습이었다. 이후 나는 다시 프렛대학 학부에 진학하고 새로운 건축인생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형태, 존재, 부재Form, Being, Absence’라는 저널Pratt Journal에 실린 레이먼드 에브라함Raimond Abraham의 글을 읽고 건축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단서를 인지하면서 나의 행보는 복잡하고 어려운 길로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네 손안에 들고 있는 보석을 누군가가 ‘그것은 보석이 아니고 흔히 볼 수 있는 돌’ 이라고 충고 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우물 안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은 한정되어 있는 우물의 모양일 수밖에 없다. 그곳을 빠져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불편함이나 향상의 어떤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
우리 건축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문화적 향상이다.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기억하고, 먼 미래를 계획하며 인재양성에 모든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학교에서 사무소에서 개혁이 필요한 때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을 거듭해서 우리만의 독창적인 성명statement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UIA인증을 받고, 건축사자격증을 NCARB에서 상호인정 받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전에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글 / 박준호(반디불 환경계획연구소) c3korea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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