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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Space/Text

건축단상_ 건축과 조화

Harmonisation 

 

건축에 있어서 ‘조화Harmonisation’라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도시와 전원을 둘러보면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그 주체자 중 하나인 건축가들이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은 내용을 제한된 지면을 통해 다 말할 수 없어 먼저 그 대상을 자연, 도시, 사람 그리고 건축 정도로 요약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건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 굳이 앙리 시리아니Henri Ciriani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건축에 있어 그 공공성을 강조함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건축은 의도된 것이고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아이디어가 있는 의도를 우리는 건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떤 주체일까? 바로 이상ideal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로, 세상에 도전하는 욕구로 가득한 그러한 사람일 것이다. 혹자들은 현실에 빗대어 이러한 건축가들을 돈키호테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여기 세 건축가들의 눈을 빌어 오늘 우리는 세상에 대한 비젼으로 건축을 혹은 도시를 보고 있는지 되새겨 보도록 한다. 먼저 알바 알토Alvar Aalto는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이야기하며, 꼬르뷔제Le Corbusier의 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 요소는 사람 - 물리적·관념적 - 이었으며, 루이스 칸Louis Kahn은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그러한 사람이 신뢰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점을 상기하자.

 

알바 알토
건축이라는 물성은 조화를 강조함에 있어 그것을 둘러싼 자연에 의해 요약되어 지듯이 하나의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다. 알토에 의해 인용된 안드레아 만테니아의 그림 ‘게세마니의 예수1460년’에서 처럼 그의 건축은 그를 둘러싼 자연의 특성에 응답하듯이 표현된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 - 그의 작품 속에서 때로는 내외부의 컨텍스트가 자연을 대신한다. - 은 항상 건축을 에워싸고 모든 것을 연결해준다. 또한 추상적인 표현은 더 이상 그에게 필요치 않으며 관념과 물성은 자연과 현실 속에 존재한다. 또한 그의 건축은 추상적인 표현 같은 개념적인 것을 거부한다.

 

르 꼬르뷔제
건축이라는 창조물objet의 태생은 땅에서 비롯된 자연의 움직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게 탄생한 오브제는 자연의 그 순수한 상징성에 보다 가까이 직접적인 화법으로 대답하고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으며, 그 결과 건축물이 된 오브제는 태생originalit렳岵?조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성pr럖ence을 인식시킨다. 여기서 사람은 두 매개체 사이의 연결주체로 혹은 결과로 세상monde을 보거나 감상하며 건축되어지는 땅은 사람에 의해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 결과로 건축 또는 오브제가 탄생되며 그 오브제 속에서 사람은 보거나 사색하며 건축된 장소를 산책한다. “이것이 감동럐otion이다.”
결국 꼬르뷔제는 자연에서 비롯된 형태의 상징성과 그 상징의 내부공간이 건축 속성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 건축이라는 창조물은 이러한 속성에 따라 장소를 제공하게 되고, 그 장소는 외부에서 또 하나의 내부공간을 만들며 그 내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외부의 존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바로 외부는 내부의 결과일 뿐인 것처럼, 바꾸어 말하면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외부공간에서의 건축, 창조물의 상징성은 고전적인 수법의 모뉴멘탈리즘이 아닌 그 컨텍스트에 대하여 구분되어지고 형태의 단순함과 요약성 만으로도 우리는 내외부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내부에서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고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로운 사람은 비로소 감동의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루이스 칸
그에게 있어 건축을 이루는 요소들 즉 빛, 공간, 그림자, 구조 그리고 소리, 수직수평의 조화 등 추상적인 요소들까지 모든 것들은 건축에 있어 원인이자 결과이다. 그에게 자연과의 균형이라는 것은 질문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칸에게 있어 장소lieu의 이유이자 목적은 사람이고 바로 사람의 의도와 행위가 그 장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그 원인과 결과가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그가 생각하는 사람은 분석하는 주체이고, 동시에 그들이 살고자 하는 장소를 살기 위한 장소로 조직하는데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이것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원인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이는 장소는 하나의 도시적 성격을 띠게 되며, 따라서 하늘과 땅이라는 추상적인 요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빛과 그림자는 그 장소를 이루고 있는 불규칙하고 각각의 다른 형태를 띤 오브제들이 존재함을 가시화시켜주는 속성이 되고 있다.

 

이 세 건축가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먼저 알토는 자연 속에 세워지는 대상이 건축이라 할 때, 건축이 초대되어진 손님이라면 자연은 주인의 입장에서 조화라는 방법으로 서로 대화한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건축은 자연의 한 요소로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과 사람을 묶어주는 매개체가 건축이다.


꼬르뷔제에게 자연과 건축은 자연과 인공이라는 확연히 다른 두 가지의 요소이다. 조화 속에서 건축은 자연의 첨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로 이 첨병은 인간의 순수한 욕구에 의해 요구되어진 것이고 이때 건축은 자연을 우리에게로 초대한다.


칸에게 자연과 건축이란 그 전과 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건축에 대한 관념이며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떠나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 조직하는 논리 같은 상관관계에 의한 리포트일 뿐이다. 건축의 요소이든 자연의 요소이든 그들은 같은 평면 위에 존재할 뿐이다.

 

오늘 우리의 도시와 건축 그리고 우리사회를 건축가라는 직업으로 되돌아보면 마치 이상한 나라의 돈키호테가 된 것 같은 씁쓸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주거, 상업, 업무 공공시설물 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시설 그리고 수없이 만들어져 나오는 젊은 건축가들……. 이제 내가 배운 교훈이라는 말의 의미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함은 무질서가 아니다. 다양함은 조화를 통해 공존하는 것이며, 실생활 속에서 포용되어지는 너그러움 같은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의 스승의 질문이 생각난다!


“Big is wonderful?”, “High is great?”

 

글 / 진영주(사람과 건축) c3korea 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