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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Space/Text

확실치 않은 언어들 Ⅷ_근대와 현대(modern & modern(contemporary))

같은 ‘모던modern’의 번역어이면서도, 그러나 이 땅에서 특히 모호한…….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또는 어떤 시대를 지향하려 하는가? 뜬금없는 질문이다. 근대와 현대. 하룻저녁 입을 열면 열 번도 넘게 뱉어질 것이다. 뱉어지는 맥락 속에서 의미는 만 갈래로 뻗는다. 그토록 많은 갈래들 속에서도 참으로 묘하게 대화는 흘러간다.

 

역사학에서의 ‘근대’란 시간을 가르는 용어로써 ‘중세’ 이후를 말한다. 하지만 지역의 맥락에서 각기 다르다. 넓은 의미에서 서양의 근대란 인본주의의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되거나 시민사회가 성립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17~8세기 이후가 된다. 반면 동양의 근대는 1860년(일 : 메이지 유신) 또는 1840년(중 : 아편전쟁)이 그 기준이다. 한국의 분류에서는 1876년(강화도 조약)이거나 1894년(갑오개혁) 즈음이다. 동서양 사이에 여러 세기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 차이는 동양의 정체기로 묘사되고 이는 곧 식민 제국주의 합리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동양에서는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해서 중세와 근대 사이에 ‘근세’라는 개념이 삽입된다. 당송(唐宋) 변혁기 이후이거나 조선의 건국 이후를 말한다. 근대에 이르기 전 중세의 질서와는 달랐던 전환기의 존재를 말하고자 함이다. 근대의 시간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현대’를 정의해 보자. 서구에서의 현대는 1차 대전의 종결 이후를 말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1911년 신해혁명이 그 분수령이다. 한국의 현대는 광복 이후를 말한다.

 

이와 같은 역사학에서의 시기 구분은 문학 등등의 다른 계열과 다른 위치에 따라 지시하는 범주가 서로 다르다. 영어 모던modern이 문장 속에서 우리말 근대 또는 현대 중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는 오로지 그 문맥에 따를 뿐이다. 한자 번역어로 전환되면서 근대는 비교적 가치개념을, 현대는 시간개념을 띠는 것으로 인식된다. 중국에서는 반대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당대contemporary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던의 용법은 모호하다. 가치개념의 관점에서 공유될 수 있는 ‘근대’의 정의를 미학자 강성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 근대란 모든 인간들이 관습과 종교와 전통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스럽고 평등하다는 계몽적 인식을 일반화시키고, 그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 그것을 완성해 나가기 위한, 이성에 기초한 시대이다.” 이어서 그는 “ … 현대란 그 존재만으로도 자유롭고 평등해야 할 (근대적)인간은 반면, 개별적으로 너무 다름을 새삼 인식하며 그 다름에 근거하여 ‘근대’가 가지고 있는 제 가치들에 대해 체제 내적인 주의환기 - 탈근대의 담론을 통한 - 를 반복하고 있는 시대”라고 다시 정의 내린다. 그렇다면 이 땅의 근·현대는? 동일한 정의를 공유한다 해도 당연히 그 의미는 조금씩 미끄러질 것이다. 미끄러짐 속에 차이가 있다. 차이에 의해 점점 더 이곳의 실재(實在)가 규명될 수 있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표현한 신영복의 단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수많은 현재. ‘압축된 근대화’니 ‘유례없는 산업화’ 등등의 말이 주는 건조한 느낌에 반해 ‘수많은 현재’는 그 모든 삶과 삶이 가진 사연들 그리고 그 사연들을 초래한 배경까지도 함께 아우르는, 오늘 우리 모습에 대한 살인의 촌철이자 대서사이기도 하다. 그 말을 이제 다시 풀어쓴다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현재’들의 잘게 나뉜 켜켜 사이가 여전히 궁금하며 때로 식민지 근대화론과 자본주의 맹아론 사이의 논쟁처럼 짜증나는 일도 벌어지기에 ‘수많은 현재’에 대한 미분(微分)이 요구된다. 미분되지 않은 현재는 허망한 쳇바퀴를 계속 굴릴 수밖에 없다.

 

근대와 현대에 대한 앞에서의 두 정의는 보편의 정의이되 서구의 정의다. 진보의 이념을 앞세우며 서구의 근대는 서구의 시민사회를 성장시켜 왔다. 동시에 서구의 현대는 오늘, 끊임없는 체제 내 자기비판의 과정을 통해 보다 더 열린 구조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사실 ‘탈근대’의 이름을 가진 모든 안티테제들은 오히려 테제에 대한 경고신호로 작용되며 결과적으로는 테제를 강화시킨다. 전통과의 결별로 비춰졌던 ‘근대’ 역시 자신들의 전통이 낳은 또 다른 자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서구의 ‘근대’는 이 땅의 그것처럼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과 갈등으로 날을 지새우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이 역사를 주체적으로 써 내려온 그들의 상황과 그러하지 못한 우리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다.

이곳의 소위 ‘근·현대적 주체’는 두 가지의 이유로 꼬여 있다. 첫째 이유는 그러한 근·현대를 뒤늦게라도 따라 잡겠다는 조급증에 있다. 경제의 관점에서 일부 성공했다. 하지만 조급증은 이곳에서의 삶의 모습을 이곳에서의 시각으로 채 설명해 내지 못했다. 새로운 담론이 생산되기는커녕 매번 새롭게 유통되는 이야기들을 쫓는 일에 너무나 숨이 가빴다. 둘째 이유는 그러한 서구의 근·현대가 우리에게도 온전히 동일하다는 타(他)·아(我)의 착각에 있다. 그것들을 또 다른 ‘나’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변화되는 모든 것들을 서구사회의 삶의 변화에 대해 거울에 맺힌 상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은 모든 것들은 과거라는 틀 속에 계속 박제되어 남게 되고 마는 것이다. 착각과 조급함으로 비롯되는 악순환. 형식과 제도로만 도입된 근대의 삐걱거림. 그 결과 빚어지는 내용과 형식 사이의 불일치이자 커다란 간격. 그것이 우리사회와, 사회가 만들어 낸 도시의 실상이다. 건축으로 대입해 보아도 똑같은 모습이다. 조급증은 우리로 하여금 안테나를 높이 올리고 바다 건너로부터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게 한다. 그리고는 즉시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 투사해 본다. 그럴 듯 할 때까지. 타·아의 착각은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난 자생적 변화들에 무심하게 만든다. 또한 본래 그러했고 또 면면히 살아 흐르는 것들을 박제화시킨다. 때문에 계속 우리에게는 지우고 새로 쓰는 과정만이 반복된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근·현대 건축사와 한국 건축사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악순환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한 가지 가능성은 형식과 제도로만 도입된 이 땅의 근·현대 속에 가치의 개념을 중심으로 놓고 보았을 때 우리에게 수용된 것과 우리에게 발생된 것 사이의 구별에서 나올 수 있다. 근대를 놓고 예를 들어보자. 강화도 조약 이후 우리에게는 낯설은 삶의 형식과 제도가 물밀듯이 들어왔고 그것은 기존의 삶의 내용 위를 덮쳤을 것이다. 주체적인 과정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단절을 이야기했다. 단절은 모든 것의 원죄로 불려져 왔다. 하지만 그 속에는 드러나지 않았으되 스스로 흐르는 근대적 가치, 즉 발생의 근대 또한 존재했다. 해강 최한기에서 신채호, 이상재 그리고 안창호에 이르는 자각들이 있었다. 또한 고종의 각종 정책들이 있다. 가가지지의 정비, 시민 공원의 설치 그리고 원구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도로망 등. 논란은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겪을 만큼 겪었고 쌓을 만큼 쌓았다. 발생의 경과와 잠재력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인식의 덮개를 들추어내고 그 속에 깔려 흐르는 새로운 현상들을 붙잡는 일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일이 함께 놓여있다.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는가?

 

준비는 슬슬 시작될 수 있다. 근·현대에 관한 답답하고 단순한 분류가 더욱 섬세해지든가 새로운 이름아래 통합되든가. 그리해서 우리 삶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그것들의 변화와 지속을 관통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어느 면 우리의 도시는 우리의 눈을 감게 만들고 또한 비판받아 마땅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비판을 근거로 삼는 대응을 말할 수도 있지만 만일 우리가 인식의 역전을 마련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 단초를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이 ‘방의 도시’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바 있다. 그곳에는 우리의 도시 속에 발생된 근·현대의 모습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저 쉽게 만국 공통어로써 근·현대를 말하지 않고 방언으로써의 근·현대를 애써 말해 본다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우리 앞에 놓일 것이다.

 

글/이종호(스튜디오 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