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일상’, 알기는 알겠지만…….
‘도시의 일상’, ‘일상의 신기루’, ……. 주말 전시회 기사에서 쉽게 발견되는 제목들이다. 서점의 서가에서는 ‘일상’의 표제와 부제가 쉽게 뜨인다. ‘일상의 발견’, ‘일상의 사회학’ 등등. ‘일상생활에 대한 섬세한 묘사…….’ 따위의 글도 문학상의 심사평에서 역시 자주 보게 된다. 홍상수의 영화도 있다. 문득 ‘일상’이란 단어가 이제 어떤 권력을 얻은 듯 하다. 일상을 담았다는 건축이야기도 쉽게 듣는다.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반영하라는 주문도 받는다. 담을 수 있는 일상이 특별히 따로 있는지. 아니 반어의 의미로 봐서 따로 있기는 있다. 이를테면 목소리가 높은 건축들은 때로 많이 비일상적이다. 무엇인가를 기념해야 하고, 상징해야 하고, (권력을) 드러내야 하고, (소비를) 자극해야 하고…….
일상이 무엇인지는 누구라도 안다. 이렇다 할 변화와 자극이 없는 하루하루가 아니겠는가? 되풀이되는 것. 진기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닌 것. 어떤 소설가에게는 구토를 일으키는 것. 변화를 꿈꾸지만 변화되지 않는 것. 하지만 특별히 강조되어 인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일상’의 의미는……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역사는 커다란 사건들, 특이점들의 기록이었다. 사회는 전체적인 구조가 더 우선시되었다. 근대를 통해 신을 벗어나게 된 인간, 그리고 그의 정신세계는 주목의 대상이었지만 개개인의 생활은 아직 그러하지 못했다. 산업혁명의 과정은 여전히 치열했고 일상이 논의되기에 개인은 아직 생산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새로운 학문인 사회학 또한 20세기 초반, 아직 거창한 사건과 본질적 구조에 더 관심이 가 있었다. 일상의 현상들이 관심의 범위 내에 들어오게 된 데는 두 가지의 배경이 있었다. 하나는 각 개인들이 과거 유산계급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자신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일이었다. 잉여의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이 묘사되어야 했고 그것은 ‘도시적 생활’이었다. 다른 하나는 전쟁과 파시즘 등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당대의 경험이었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눈앞의 현실이었으며 소위 일상의 생활세계를 처절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건들을 만들어 낸 시공간은 시민의 힘으로 오랜 투쟁 끝에 만들어 내었던 공화(共和)의 시공간이었다. 무엇이 그와 같은 사건들을 낳게 되었는지. 그 토대가 궁금해졌다. 토대는 결국 일상이었다. 사건이나 변혁이라는 상부구조는 매일매일의 삶이 만들어 낸 구체적 현실의 적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 이론으로 붙잡기는 어려웠어도 일상의 동태를 추적해 낼 필요는 발생하였다. 필요는 발생했으되 추적과 탐구의 방법은 묘연했다. 일상의 현실을 어떠한 방법으로 포착해낼 것인가? 포착해 내는 순간 현실과 삶의 모습은 벌써 다른 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데. 포착마저 어려운 일을 건축에서는 어찌 담아내려 하는가? 만일 가능하다면 그것은 작업자 개인의 마음에 맺히는 심상 정도의 수준인가? 그래도 괜찮은 건가? 화가들이 보여주는 한 단면의 일상 정도면 건축에 담을 만한 것인가?
사회과학에서의 일상에 대한 탐구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가장 쉽게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도대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추적해 보는 일이다. 생활조사이다. 조사의 대상이 많을수록 통계적 가치를 가진다. 이 방법은 오늘날 마케팅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좀 더 그럴듯한 다른 방법은 일상생활 속의 작은 의식(意識)들을 추적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일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않지만 각 개인들이 한 사회 속에서 그들의 공감각을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해 가는가에 대한 작은 답을 만들어준다. 또 다른 방법은 좀 더 거시적이다. 일상은 개인의 미시적 영역에도 있지만 사회의 각 단위 집단들인 관료조직, 사회조직 등에게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일상생활이라는 명제 자체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이다. 왜 일상생활을 연구해야 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는 근본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이란 물음의 자리가 이동되지 않으면 그저 맴돌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일상에 대한 학문적 고찰은 아직 그와 같은 맴돌이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제 선택이 필요하다. 건축(물) 내부에 담겨지는 개개인들의 일상의 과제는 그냥 유보하자. 도시의 일상이라는 차원에만 주목해 보자. 그랬을 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상은 개개인을 넘어선 어떤 단위들의 일상이다. 단위집단들 또는 대상이 되는 사회의 총체적인 일상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유효하다. 사실 일상에 대한 관심은 무언가 거대했던 것들에 대한 역반응이다. 그러한 역반응은 ‘삶’에 대한(현상학자들과 실존주의자들), 미시적인 권력에 대한(푸코Michel Foucault 류) 고찰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사회의 총체성 속에서 일상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고찰해 온 연구에 있어서는 사회학자 르페브르Henri Lefebvre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사회(도시)가 보여주고 있는 공간적 현상들에 대해 무언가 더 들여다보고 싶어 시도하는 글 읽기마다 르페브르에 부딪히게 된다. 그의 초반 연구는 일상에 대한 관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전개하는 논의들은 사회적 공간과 그 현상에 대해 일정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르페브르가 천착해 온 일상이란 그가 주창하는 사회변혁의 출발이자 대상이다. 일상생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비판이야말로 사회의 변혁을 위한 단초임을 주장한다. 그는 현대의 사회란 새로운 조직과 제도들에 의해 억압되고 조정되는 사회로 간주한다. 특히 자본의 전략이란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일상을 공고히 하며 지속적으로 소비조장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는 것이라 본다. 따라서 그와 같은 일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대항 전략이 마련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그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 이를테면 소비, 유행, 여가, 성, 가정 등등의 문제들을 그와 같은 관점에서 날카롭게 분석한다. 심지어는 도시화의 과제 또한 일상성의 범주에서 분석된다.
도시화의 문제가 어떻게 일상과 관계되는지는 이 나라의 현상에서도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수없이 진행되었고 아직도 시도되고 있는 ‘택지 개발사업’과 같은 종류의 경우이다. 그와 같은 사업은 때로 진정한 수요를 감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지역의 토건연합체라는 자본 중심의 이해집단이 그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벌이는 일이다. 일을 촉진하기 위해 관공서를 옮기고 시장과 터미널 등의 중요한 시설을 함께 옮긴다. 그 결과 한 도시에 쌓여왔던 생활이 갑자기 혼란을 겪는다. 기억의 장소들이 해체된다. 결국 지속되었던 삶이 흔들리고 도심의 어느 지역은 쇠퇴를 겪는다. 전라도의 광주에서, 순천에서 그러한 현상을 여실히 보고 있다. 인구의 정체기에서 도시화 지역의 확대는 반드시 기존의 도시와 그 삶을 파괴시킨다. 위태로운 삶이며 그 삶이 바로 일상이다. 어느 개인의 일상이기보다는 한 단위 사회의 총체적 일상이다. 일상에 관한 연구 이후 르페브르의 연구는 도시화, 공간의 생산 등의 연구로 이행된다. 과정과 그 내용 등의 설명은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공간의 생산에 관하여 공간의 실천, 공간의 재현, 재현의 공간으로 설명되는 사회공간의 이론은 건축을 보는, 특히 도시를 이해하는 틀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준다. 공간의 생산을 둘러싸고 도시가 작동되는 모습의 한 단면을 설명해 준다.
건축에서 일상을 담는다는 표현은 표현의 좌표가 어디인지 되물으며 사용될 말이다. 전시회의 그것과 같다면, 그래서 개인이 노출하는 작은 조각들이라면 그러한 대로, 사회가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묻힌 식민화된 일상이라면 또 그러한 대로, 아니면 근본적인 변혁의 대상이자 조건 그 자체이기에 치밀한 관찰과 분석이 따라야 하는 일상이라면 또한 그러한 대로 표현의 좌표를 나눌 일이다. 첫 번째라면 지나가자. 이미 담기고 있을 테니. 두 번째와 세 번째라면 새롭게 바라보자. 도시의 문제이니.
‘일상이 작품이 되게 하라’라는 르페브르의 좌표는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사회적 운명을 손에 쥐고 그것을 책임지는 행위를 가리킨다.
글/이종호(스튜디오 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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