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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Space/Text

건축단상_우리도시건축이야기

The Fragmentary Thought of Our Urban Built Environment

 

들어가면서
설계사무소를 내고 만 5년이 지났다. 여기에 모인 글은 일관성 있게 하나로 전개한 것들이 아니다. 작업과 삶 속에서 여러 다양한 상황과 돌발적 사건을 겪으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평소에 적어 두곤 하였다. 그러한 단편들 중에서, ‘우리의 도시와 건축’에 관련된 것들을 모아 보았다.

 

020821 자전거 뺏기 
흔히 달동네가 아름답다거나 소중하다는 관점을 묵살해 버리는데 잘 사용되는 질문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라. 여기에서 살래, 아니면 아파트에서 살래? 그러면 십중팔구는 아파트가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달동네를 칭송하는 그러한 것들은 모두 감상적이고, 그곳 사람들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공정하지 않다. ‘잘 달리고 몸에 익숙한 중고 자전거와 새로 뽑은 자동차 중 당신 무엇을 탈래?’ 라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시 재개발은 절대로 달동네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안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잘 듣던 자전거마저도 빼앗아 간다. 비교할 수 없는 것, 가능하지 않은 것을 비교하면서 그것이 마치 당연한 귀결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020909 내가 바라는 서울의 모습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곳에 산다고 하면, 그것이 어떤 상징이나 권력으로 느껴지지 않고 한 장의 사진 혹은 이미지나 느낌으로 다가올 날을 꿈꾸어 본다. 예를 들어 ‘어디 사세요?’ 라는 질문에 ‘네. 옥인동에 삽니다.’하면 ‘아, 거기 인왕산이 보이는 참 조용한 동네지요.’ 라든가, ‘대치동에 삽니다.’ 하면 ‘아, 거기 집들은 빼곡하지만 작은 공원이 많이 있다는 곳이지요.’ 라며 서로의 동네를 알아주고, 일부러 찾아가 볼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020911
우리 도시 - 살아있는 도시 - 에서 건축적 맥락은 미미한 것이다. 중요한 맥락이란 도시의 기능적 맥락이며, 이것은 모든 지역에서 강렬함을 발하고 있다. 
 

040103 점심을 먹으며 건축가 김영수 씨가 한 웃지 못할 이야기 
‘어느 교수님인가가, 개와 같이 살 수 있는 아파트라는 것을 내 놓았는데, 그게 개념은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세상이 옛날에는 어른을 모시고 사는 3세대 공동주거 아파튼가 뭔가 얘기들 많이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건 시들해지고. 그러니까, 뭐 부모가 개만도 못하게 된 것은 아닐 테지만, 개와 같이 살수 있다 뭐 그런게 어필하는 시대가 된 것이 참 …….’
 

041030
요즘 들어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시위문구는 이런 것이다. ‘서울이 수도면, 지방은 하수도냐!’
 

041104 서울은 개판이다. 
낡고 허름해서 남 보이기 부끄럽다고 개판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훈도시에 기모노를 걸치고, 양풍의 주택에 살면서 무지한 조선 백성의 미래를 걱정하는, 제 주제도 모르는 식민시대 조선지식인 같은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서울을 어떤 도시로 만들려 하는가. 그리도 생각이 없는가? 피맛골을 없애고 대형 상업건축을 지으려는 그 강심장은 무엇이며 오래된 지역에 마을을 없애고 아파트를 세워 사람을 몰아내는, 강북과 강남의 균형개발이라는 기막힌 문구와 실현은 어떤 것이고, 종묘 앞에 그리도 지겹게 서있던 세운상가를 없앤다고 하더니 다시 그보다 높은 빌딩을 세우는 그 심보는 어디서 온 것인가? 차라리 비우라. 아니면 그냥 두어라. 
 

041225
오마이 뉴스에서 외발산동에 철거반원 100여 명이 쳐들어와 세입자들을 몰아내고, 집을 부수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대립 중 경제정책을 성장위주로 할 것인지, 분배위주로 할 것인지 논쟁이 심각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성장을 말하는 자 중에서 가난한 자를 나는 보지 못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왜 일까? 아마도 그들은 가난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저들의 집이 남의 손에 의해 ‘개 값도 안 되는 돈 몇 십만원’을 받고, 엄동설한에 쫓겨난 적이 없을 것이다. 
 

050203 수요답사 220회를 맞이하며 
만 4년 동안 우리는 종로와 청계천이라는 큰 축을 그으며, 서울의 구도심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머리 속에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 ‘역사와 자생’. 이것이야 말로 서울을 포함한 우리 도시를 설명하는 핵심어가 될 것이다. 특히 자생은 우리 도시 고유의 속성이라 여겨진다. 역사적 필지이든 어떤 형식으로 개발된 필지이든 도시환경을 점유하는 주체들의 자생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도시 속에 서식하는 이들 자생적 도시생명체의 존재를 깨닫고 우리는 그 이름을 ‘기간’이라 칭하였다. 
 

050523 다세대에 드는 생각
다세대의 간략한 정의는, ‘작은 땅과 자본을 가진 소유주가 분양과 임대를 계산하여 건축하는 가장 소규모 개발의 단위’ 라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개인의 거주환경 개선과 자본의 확대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050531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서울은 얼마나 사실일까? 
 

050616 시간의 질서를 부여한다. 
근대와 현대화 과정을 겪은 역사도시에서 어느 것을 중심으로 고유의 정서를 편성할 것인가, 혹은 가치의 선택을 거쳐 각기 다른 시기의 것들을 공간 속에서 어떻게 결합하여 갈 것인가를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050712 삶은 붙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생적 건축의 핵심이다. 제한된 조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므로 우리의 삶의 방식과 매우 닮아있다. 
 

050808 자생의 영역과 계획의 영역 
무엇보다 자생의 영역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는 반드시 수용해야 할 조건이나 구조가 전제된다는 것 - 마치 자연에 서식하는 생명체에게 환경이란 조건이 전제되듯이 - 그리고 그것을 점유하는 존재 - 기간을 포함하여, 여러 주체들 - 에 의해 형성되는 집적물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집적물은 유지관리와 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계획의 영역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051221 제국의 기술 - 한국건축가 협회 잡지 건축에 글을 쓰다 남은 것. 
아직도 우리 건축계는 ‘제국의 기술’이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어쩌면 모더니즘을 배제한 모던한 건축양식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복잡한 언사와 함께 뒤섞여 들어오는 ‘특이하고 상징적인 형태와 공간조작의 기술들’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새 것이지만 바깥에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학교 안팎에서 배우고 실천하지는 않는지 의심한다. 
 

060318
우리에게 근대는 없다. 다만 근대적 수용기가 있을 뿐이다. 근대적 수용기에 우리는 두 가지를 양산하였다. 하나는 근대적인 건축물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적인 기능단위기간들이다. 극장이나 교회, 학교처럼 건축물과 그 ‘기간-기능’이 일치하는 예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분리되었다. 극장이 사라지고 그곳에 여행사, 가구점, 슈퍼, 고시원이 점유하게 된 예처럼, 역사적 도시조직을 포함한 다양한 도시의 건조 환경에 근대가 양산한 수많은 ‘기간-기능’들이 서식하여 기간의 도시를 이루었다.

글 / 조정구(guga 도시건축) c3korea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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