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rgence of Design Tool & Division of Professional Career
다른 어느 때보다도 시간의 변화가 빠르게 느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것도 그 변화의 폭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하는 시간마저 무색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고민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다소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변화의 불확실성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기저 또는 안정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중간은 하자라고 결정할 것인가 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거대한 조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로하신 필자의 부모님은 항상 질문하신다. 당신들께서 인터넷을 반드시 배우셔야 하느냐고.
건축계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예외가 아니다. 자와 연필만으로도 끈질기게 무구한 세월을 버텨왔었는데 지금에 와서 새로운 컴퓨터다 소프트웨어다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하여 바꾸라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의사결정권자들이 이러한 요구에 대해 충분히 주지하고 절감하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에게 시간의 변화와 함께 다가온 도구의 급격한 변화는 전통적으로 머리와 손을 함께 써왔던 우리의 직능체계에 있어 지금 이 시점 매우 중요한 질문과 도전을 던진다.
필자는 지난해에 디지털 디자인에 관련한 여러 번의 워크숍과 특강을 통하여 다양한 질문을 받아왔다. 그 질문의 바탕에 깔려 있는 속 내용인즉 공통적으로 ‘내가 그것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까?’였다. 지금이 분명 과도기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역사의 어느 시점이 과도기가 아닌 적이 있었는가 자문해 본다. 15년 전 디지털과 아날로그 패러다임 전환기에 적절한 수용의 문제를 놓고 찬반의 격론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떠한 결론도 도출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러한 양자를 더 이상 대결 구도로 파악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우린 어느덧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건축 설계 분야에서의 디지털 방식의 도입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내적 고민들이 외적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디자인에서의 직능 분화이다.
어느 순간부터 설계실의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쓰는 사람과 손을 쓰는 사람으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시작되었다. 과거에도 물론 이와 유사한 형태의 직능의 분화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차이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고용할 때 그 사람이 수행할 직능에 관한 명확한 설명과 이해 그리고 필요가 쌍방간 사전에 이미 충분히 커뮤니케이션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드래프터drafter가 필요하면 드래프터를 고용했으며 모델러modeler가 필요하면 모델러를 고용했다는 것이다. 직능의 분화는 매우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솔루션이며 또한 전문화라는 장점이 조직의 힘을 배가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의 직능의 분화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요즘에는 누구나 디자이너로 들어오나 디자인적 사고와 의사 결정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디자인을 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소수이다.
여기에 갈등의 요소가 있다. 과거의 경우와 비교하여 신진 디자이너들의 차이점은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에 보다 적합하게 특성화되어 있는 상태로 그들의 프로페셔널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필드에서 그들의 능력이 디자인능력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렌더러renderer와 같은 기술skill적 측면으로만 인식되고 이용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디자이너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생각하는 직업이라는 말과 같이 머리와 손이 일체가 되어 움직이던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의 새로운 디지털 도구 선점의 차이로 인한 직능 간 머리와 손의 분리는, 서로 의사 소통을 위한 방식에 필요 이상의 시간과 갈등을 수반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로 빚어지고 있다.
젊은 신입사원들과 30대 후반 또는 40대의 실무 책임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의사소통의 간극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다. 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도입부에서 수용 여부를 놓고 갈등했던 세대와 테크놀러지의 부흥기를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성장한 세대와의 시간적 격차는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필드에서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은 아주 간단하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무슨 일 하나를 처리하려 해도 혼자서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급직 실무자들로 인해서 생기는 비효율성은 자동적(?)으로 도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세대 디자이너들에게 잔업의 형태로 돌아가게 된다. 상급직 실무자들은 어쩌면 너무 이른 시기에 펜 - 현 시점에선 디지털 툴 - 을 놓고 의사 결정 단계의 디자인 직능인decision maker이 되고자 서두르는지도 모르겠다.
3차원 디자인 툴의 특성상 부분 부분을 분리해서 작업을 프로세싱하는 것은 힘들다. 2차원적인 설계 방식이 입면도나 평면도를 개별적으로 - 물론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한다고 주장하기는 하나 - 진행하는 것과는 달리 3차원 디자인 패키지를 이용한 설계 방식이 가지는 특성은 내외부 공간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결코 분리하여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디자인 과정을 풀어내는 한 개인의 역할이 매우 증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한 개인이 결정해야 하는 부분decision making 역시 증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화된 디자인 툴 패키지가 추구하는 이러한 효율성은 디자이너, 오퍼레이터, 그리고 디자인 관리 체계로 분업화된 기존 설계 조직의 효율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러한 차이가 조직 내에서의 갈등 요소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신진 그룹들의 도구에 대한 전문성은 기존 조직의 부동(?)의 직능 체계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아이러니컬하게도 의사 결정단계에서 과거에 비해 더욱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실무에서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역할이 프로덕션(모델, 도면을 비롯한 보고서나 그 이외의 업무들)에서 기획과 경영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업무의 효율상 경험이 풍부한 디자이너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또 다른 형태를 갖는다. 그들을 계속해서 프로덕션 단계에 묶어 놓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경영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실 디지털 디자인 체계의 구체적인 응용application의 습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디자인 마인드의 형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행정 장교출신의 장군이 병사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약간은 고리타분한 영웅 지향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병사들은 분명 역할은 다르지만 같은 필드 오퍼레이션field operation을 공유한 전장의 장군을 더 존경하고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이는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라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로간의 이해의 폭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급자가 실제적 작업 과정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있다면 이러한 직능 체계상의 갈등 요소들을 상당히 줄일 수 있으리라 본다.
디자인과 같이 생산 단계를 관장하는 산업과 연관된 필드에서 적응 안 된 소수를 위해 맞출 수 있는 테크놀러지는 거의 없다. 테크놀러지는 대중의 효율성과 경제성의 원리에 의해서 개발되고 향유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자신이 소수에 해당된다고 느낀다면, 나는 머리가 나빠서, 너무 늙어서, 사는데 정신이 없어서, 아이 때문에 피곤해서 등과 같은 너스레를 떠는 것을 그만두라고 권하고 싶다. 소극적인 사람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한 맞춤 테크놀러지가 아니라 중고 디자이너used designer라는 딱지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두에 꺼냈던 필자의 부모님의 질문에 대해 필자는 ‘앞으로 100년은 더 사실 텐데 인터넷 모르시면 너무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라고 반문한다.
글 / 김찬중(CHAN.SYS DESIGN) c3korea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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