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치 않은 언어들 Ⅹ_다이어그램(Diagram)
해석의 도구에서 생성의 주체로.
VISIO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VISIO 2003은 복잡한 개념, 프로세스, 시스템을 문서화하고 구성하는 비즈니스 및 기술 다이어그램을 만들 수 있는 다이어그램 프로그램입니다. … 분명하면서도 간략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가시화하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다이어그램의 보편적 의미가 모두(?) 설명되고 있는 것 같다. 다이어그램의 고전적 정의는 그 어원대로 ‘전체를 관통하는dia 쓰기·새기기gram=graphein’이며 비가시적인 정보를 가시화하여 나와 또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건축에서의 의사결정이란 무수히 많은 변수들에 대한 효과적 통제행위다. 변수들의 과잉상태를 조절하여 통제 가능한 상태로 안정화 시키는 일이다. 그 과정 중에 우리는 쉽게 어떤 선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그림들, 다이어그램을 끄적거리게 된다. VISIO 프로그램의 설명과 같이 분명하며 간략하게 정보를 가시화하고 전달되도록 하려 한다. 오늘의 사회는 점점 더 복잡, 복합, 불확정해지고 있으며 건축의 의사결정 환경 또한 점점 더 그러해 지고 있다. 소위 건축이 요구하는 ‘무한변수 통제능력’의 필요성이 더욱 더 커지고 있다. 다이어그램의 기원이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울산 반구대의 추상화 같은 암각화 역시 일종의 다이어그램일 수도 있다. 제의의 목적으로 대상을 도상화(圖像化)하고 그것들과 사람 사이의 관계 - 사냥의 대상으로서 - 를 주문화(呪文化)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건축에서는 어떠했을까? 아마도 근대라는 사회를 만나기 전까지, 건축자체의 규율이 더 우선했던 시절까지의 작업 과정에서 다이어그램이라는 매개 수단이 특별히 필요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19세기 무렵, 건축에는 그 이전까지 고려되지 않았던 철도역, 병원, 박물관 등등의 새로운 프로그램의 목록들이 추가되기 시작하였다. 상황은 복잡해졌고 작업은 어려워졌으며 현실화시키는 과정 속에 갈등이 생겼다. 갈등을 메울 수단은 대상이 가진 정보를 요약하고 복잡함을 압축하며 그 내외부적 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고 배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바로 그 지점에 새로운 도구로서의 다이어그램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건축에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흔히 접하는 각종의 기능도, 동선도 등이 그것들의 쉬운 예였다.
그러던 차 프로그램 자체의 의미 변화 - 담겨질 기능들로부터 활동들을 포함하는 변화 - 와 더불어 다이어그램 또한 새로운 상황 속으로 변화해 나갔다. 단지 기능들의 크기와 관계를 배열하는 역할에 더해 담겨질 활동들이 보여주는 벡터(방향성)들을 살피고 조직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활동의 궤적을 누적하는, 이를테면 학교계획에서 선생과 학생들의 동선을 누적하는 다이어그램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뿐만 아니라 도시차원의 작업에서도 그러했다. 케빈 린치Kevin Lynch의 도시 분석 체계와 그의 다섯 가지 모델 - 패스path, 에지edge, 디스트릭트district, 노드node, 랜드마크landmark - 과 그에 따른 아이콘 그리고 그것들에 의한 전체적 도시 분석 다이어그램은 ‘경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도시’라는 측면에서 각각의 도시가 가진 성격들을 명료하게 해석해 내었다. 이제는 조금 ‘도식적’ - 이 말 자체가 다이어그램의 고전적 의미이다. - 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와 유사한 다이어그램의 수법들로 여러 나라의 도시들이 해석되며 처방 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지나치게 대상을 구조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구조화라는 것의 한계는 대상을 고정적이며 정적인 것으로 보는데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해석이 곧 처방을 낳는, 환원적이며 결정론적인 위험을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 행위 건축Behavior Architecture의 많은 예들이 그러했고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의 패턴 언어 또한 그러한 맥락에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다이어그램은 해석과 매개의 도구를 넘어 직접적인 생산의 도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회의 복잡, 복합, 불확정화의 계속적인 증대로 인해 다이어그램의 역할에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생산의 직접적인 도구를 넘어 이제는 생성의 기능, 즉 스스로 생산의 주체가 되려고 한다. 벤 반 버클Ben Van Berkel의 뫼비우스 하우스는 거주자 2인의 생활을 입체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묘사하고 그것이 바로 그들을 위한 집의 구조와 형상으로 번역되었음을 강변한다. 복도로 이루어지는 ‘근대적 공간체계’에 대한 되물음에서 시작하여 백 스테이지 공간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이 재검토되며 마침내는 흡사 블록 다이어그램의 모습으로 남는 세지마 가즈오Kazuyo Sejima의 쉬타트 씨어터Stads Theater가 있다. 라울 분쇼텐Raoul Bunschoten은 그의 연구집단 코라CHORA의 활동에 대한 설명 중에서 “… 어떻게 우리는 발현하는 특이성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동적 발전을 창출하는 다이어그램적 가치를 이들 특이성에 부여할 수 있을까? ” 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다이어그램은 개념적인 입력/출력 장치로, 물질을 삼키기도 하고, 재구조화를 거침으로써 뱉어내기도 한다”는 녹스NOX의 라르 스퓌브릭Lars Spuybroek의 말 속에 ‘뱉어낸다’는 표현은 다이어그램의 주체적인 자율성의 다른 표현으로 들린다. 이들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그리고 그 과정이 다이어그램으로부터의 자율적 생성이든 아니든 다이어그램의 역할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로 변화해 나가려는 징후를 읽을 수 있다.
왜 그럴까? 사회의 복잡, 복합, 불확정화의 정도가 심해질 만큼 심해졌기 때문인가? 건축생산의 과정도 더욱 복잡해져 각종의 의사결정 과정들, 이를테면 발주자 시스템의 복잡성, 상업적인 프로젝트에서의 시장 위험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합의 과정의 난이성 등등 모두에 걸쳐 그 어려움이 증가하기 때문인가? 하기는 그래서 현대의 건축가들이 갖추어야 할 ‘무한변수 통제능력’은 마치 공중전을 벌이는 전투기 조종사의 그것과 같다고 건축이론가 샌포드 퀸터Sanford Kwinter는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실은 다른 요인이 있는 듯하다. 그것은 현대 사유의 전환, 이를테면 구조주의로부터 후기구조주의로의 전환과 궤를 같이 한다. - 전환하는 사유형식에 건축의 사유 또한 매번 추종되어야 한다면 참 한심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의 변동을 공유하는 한 그것은 승인될 만한 일이기도 하다. - 달리 말해 대상에 대해 정적이고 고정된 시각을 가졌던 구조주의에 비해 후기 구조주의는 그것을 좀 더 역동적인 상황으로 재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유에서 다이어그램이란 어떠한 요소들이 일정한 관계와 흐름 속에서 계열을 이루다가 갑자기 솟아나오는 바로 상황, 바로 그곳(장)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다이어그램이란 새로이 출현할, 새로운 종류의 실재를 구축하는 것,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싹(들뢰즈)이기도 하다. 난해하다. 하지만 말하는 바 핵심은 다이어그램은 단지 대상을 압축, 정리하는 역할을 넘어 이제 그것 스스로 생성의 잠재력을 가지려 한다는 것이다. 텍스트가 필자의 손을 떠나 자율성을 가지는 것과 같은? 그리 잘 설명할 능력은 없다. 그렇지만 라울 분쇼텐이나 녹스를 비롯하여 다이어그램에 의한 방법들에 관심을 가지는 건축가들의 언설 속에 이미지, 도상 그리고 단독성 등 고스란히 들뢰즈의 언어들이 재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들이 다이어그램으로부터의 어떤 솟아오름, 발생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는 점이 읽혀진다. 그것들의 진정성을 이 자리에서 판별할 일은 아니다. 단지 오늘날 아방가르드 집단의 특성이 근대 아방가르드들의 비현실적, 초월적 특성과는 달리 현실(리얼리티)의 조건에 대한 섬세한 리서치를 베이스로 작업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내외부로부터 끌어들인 파라메터를 조작하여 그저 흐르는 형태의 동적 이미지에 골몰하는 부류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리얼리티의 복잡성 그 자체에 기꺼이 정면으로 맞서는,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다이어그램이 단지 상징이나 비유를 통해 형태 생성의 도구로 쉽게 주저앉지 않고 외부의 복잡한 변수들과 지속적인 상호반응을 나누는, 다시 말해 다이어그램 그 자체를 지속적인 사유의 도구로 삼는 그런 집단이라는 점이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를 위한 도시기본구상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이제까지 그려왔던 도식적인 다이어그램이 얼마만큼 현실(리얼리티)과 유리되어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다이어그램 작업을 반복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처방이 ‘발생’하는 경험을 부분적으로 맛보게 된다.
글 / 이종호(스튜디오 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