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Space/Text

확실치 않은 언어들 Ⅰ_리얼리티(Reality)

EiundSüdkartoffel 2014. 5. 22. 04:20

대상이 가진 리얼리티’라고 말할 때 대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무엇을 말하지 않는 것인가?

건축과 도시를 둘러싼 논의들이 꽤나 뜨겁다. 건축에 도시를 담는 일과 건축을 있도록 만드는 도시 그 자체에 관해서이다. 오랜 시간 동안 건축내부로만 닫혀 지내온 논의들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도시에 관한 논의와 탐색은 도시에서 끝나지 않으며 건축을 생성시키는 방법에 대한 모색에까지 이른다. 데이터, 데이터 스케이프, 다이어그램, 코라 그리고 프로그램 등등. 자의적인 듯도 하지만 때로는 컴퓨터의 힘을 빌린 객관화된 자동생성과정인 듯 설명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와 같이 도시로 향하는 시선이 늘어나는 것은 건축을 보다 더 사회와 얽히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건강하고 다행한 일일 수도 있다.


도시로 향하는 시선은 대상을 보는 일, 아는 일 그리고 그것들을 건축으로 바꾸어 내는 일을 포함하여, 소위 인식과 반응에 관한 일련의 논의들을 불러낸다. 그러나 인식이나 반응이라는 단어들 어느 하나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 용어 하나만 붙잡고도 반평생을 끌고 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건축가들의 용법은 어느 면에선 매우 단순하기도 하다. 단순함이 큰 결점은 아니되 문제는 오류를 피해가야 하는 일이다.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정교함은 필요할 것이다. 데이터나 프로그램 등등의 용어들은 대상(또는 대상도시)을 바라보는 방법에 관한 용법들이다. 그리고 바라보는 과정 이후의 분석, 정리의 과정과 건축으로의 전환과정 모두를 둘러싼 이야기들의 가장 앞줄에는 흔히 ‘대상이 가진 리얼리티’가 자리를 잡고 있다.

 

리얼리티는 문예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흔히 허구와 환상, 때로는 낭만에 대응되어 사용된다. ‘이즘’이라는 말을 붙여 나가게 되면 네오, 쏘셜리스트, 판타스틱 등의 접두어와 함께 많은 갈래들을 만들어낸다. 건축에서는 대개 현실, 현실성에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며 도시와 관련해서는 흔히 ‘그 도시의 진실 또는 실재’를 표현하는 말로 쓰여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건축가들은 과제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에 따른 자신의 반응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작업의 과정으로 보여주게 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만일 그와 같은 결과의 차이가 ‘현실’에 대한 인식 이후의 반응과정으로부터 비롯된다면 그것은 각자의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전개방법에 있어서의 차이이기 때문에 당연하며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그 차이가 대상이 가진 리얼리티에 대한 인식의 차이들, 더 나아가서는 오해들로부터 비롯된다면 그 인식과 오해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남게 된다. 바로 대상이 가진 리얼리티, ‘진실 또는 실재’를 어떤 차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관해서이다.


어원을 따져 본다면 리얼리티라는 단어는 사물을 의미하는 라틴어 [res]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리얼은 글자 그대로 thing-ly(사물-같은)를 의미하는 [res-al]의 축약형이다. 따라서 리얼하다는 것은 지극히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사전을 한 번만 더 인용하자. 리얼리티에 대비되는 단어인 버츄얼리티virtuality는 ‘가상성’으로 이해, 사용되어진다. 하지만 사실 그 어간인 버츄[virtue]는 덕(德) 또는 효력의 뜻을 가지며 라틴어 [vir]에서 유래하여 ‘힘’을 뜻하게 된 [virtus]에 그 어원을 둔다. 그러기에 버츄얼은 실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버츄얼은 ‘가상’보다는 오히려 ‘실상(實相)’에 가깝고 ‘가상적’이기보다는 ‘실효적’, ‘효과적’인 것을 더 의미하게 된다고 한다. 효과는 그것이 가치, 목적, 기능 또는 의미와 같은 힘(virtue)을 행하는 것에서 유래하며 정신(의식)에 의해 제공된다. 그러므로 리얼이 대상 스스로 가진 지극히 물질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에 반해 버츄얼은 관념, 이론, 믿음, 개념 등과 같이 대상에 효과적으로 투사되는 모든 것을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리얼리티가 대상(또는 사물) 자체의 리얼한 성질을 표현하고 있다면 버츄얼리티는 인식하는 자에 의해 대상(또는 사물)에 수여(受與)된 실효적인 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시대의 언어인 ‘버츄얼 리얼리티’는 통용되는 바 ‘가상의 현실’이기 이전에 ‘그렇다고 믿는 실효적 현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인식과 반응을 둘러싼 이야기로 되돌아가 본다. 대상을 인식하는 일은 리얼한 성질들에 대한 인식과 버츄얼한 속성들에 대한 인식이라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1> 그 둘을 나누기는 매우 어렵다. 알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식하는 자가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의 속성을 수여했는가에 따라 구분되어질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한편 속성을 수여하는 과정에는 이미 인식하는 자의 가치판단이 따라붙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지점 쯤에서 우리는 리얼리티를 둘러싼 우리의 관습적 언어용법에 대해 좀더 정교한 판단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과연 건축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리얼리티’라는 언어는 인식을 이루는 두 단계의 과정 중 그 어디쯤에 좌표가 매겨지는 것일까? 위의 구분에서처럼 앞 단계의 리얼리티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리얼리티와 버츄얼리티 둘 다를 말하는 것인가? 행여 두 번째 단계인 버츄얼리티에 가까우면서도 그것을 리얼리티라 간주하며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무엇은 말하고 있으되 무엇은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대상 과제 또는 대상 도시에 처음 접근해 들어가면서 흔히 인식의 지도 작업(코니티브 매핑cognitive mapping)을 시도하곤 한다. 매핑(사실 이 말 또한 확실치 않은, 더 알고 싶은 언어 중 하나이다.)은 글자 그대로 지도를 그리는 일이며 인식을 형상화시키는 작업이다. 또 지도란 애초에 작성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는 작업이다. 앞서의 데이터 스케이프, 다이어그램 등등의 이야기들도 크게는 그와 같이 어떤 종류의 인식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어쨌든 근사한 매핑이 이루어지고 나면 우리는 곧 근사한 반응(작업의 전개)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리고 반응(작업)의 결과들은 ‘대상이 가진 리얼리티’에서 출발되었음을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믿은 리얼리티들은 사실 건축을 통해 훈련된 관념과 개인적인 지향성 등을 각자의 기대와 환상 속에서 대상에 스스로 수여한 속성인 경우를 빈번히 보게 된다. 그러기에 그때의 리얼리티는 말 그대로의 리얼한 성질reality이기보다는 버츄얼한 속성virtuality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따라서 건축가들의 믿음과는 달리 작업은 리얼리티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 교육된 전문가로서 스스로 대상에 수여한 관념, 이론, 믿음, 개념 등등의 버츄얼리티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응(작업)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주요한 이유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인식 이후의 전개과정에 있어 각자가 가진 가치관에 따른 차이이기보다는 인식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개념에 따른 차이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건축가들이 사용하는 ‘리얼리티’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실상 버츄얼리티이며,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진짜’ 리얼리티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이 리얼리티를 말하되 ‘진짜’ 리얼리티를 말하지 않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다면, 사태는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즉 대상이 요구하거나 말하고 있는 사실을, 현실을 제대로 보고 듣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보고 싶거나 듣고 싶은 것들인 버츄얼리티를 리얼리티로 간주해 버리고 그에 따른 반응과 결과를 이어나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 사이에 언어 소통의 장애를 만들어 내는 것 뿐 아니라 도시이든 건축이든 전문인들의 작업 결과가 현실로부터, 현실의 욕구로부터 간극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의 불확실한 용법이 오해를 부르고 인식의 과정을 충분치 않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리얼리티’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버츄얼리티’를 계속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의 단계를 건너뛰고 있는 것이다. 반응은 오류에 빠지기 쉽고 작업의 결과는 부유하기 쉬운 것이다.

 

놓치고 지나가는 리얼리티를 붙잡기 위해 리얼-리얼리티real-reality라는 강조어를 사용하려 했더니 이미 누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We create our own reality, constantly. We certainly all see reality differently, colored by our expectations and intentions.”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확실히 우리 모두는 우리의 기대와 의지로 덧칠해 진, 서로 다른 리얼리티를 바라보고 있다.”<2>

 

<1>. 'Resception and Virception', William van den Heuvel

<2>. 'reality', Peter Russ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