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단상_ 브랜드 건축
Branding in Architecture
현대 정보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매일 쏟아지는 광고와 새로운 제품 앞에서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점심 시간에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선택의 상황이 즐거운 사람과 괴로운 사람의 차이는 아마도 식사에 대한 자신의 계획과 개념이 어느 정도 명확한가 아닌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 이러이러한 식의 음식을 주로 먹는다라는 웰빙 개념이라든가 아니면 저녁은 푸짐하게 먹고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한다라는 식의 패턴화라든가 하는 것들이 수많은 선택 조건 상황 하에서 어느 정도의 선별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와 같이 식사에 대한 특별한 개념도 없고 주변 상황으로 인해 선택인자 자체가 부재(?)하여 점심시간이 매우 괴로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소비자들로부터 어떻게 선택되어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일반적 산업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마케팅툴들을 들고 나온다. 소비자의 잠정적 선택을 파악하기 위해 트렌드를 분석하고 벤치마킹을 통해 경쟁사와의 차별화 방안을 모색한다. 심지어 사무실 운집 지역에서는 점심시간 때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직장인을 상대로 엄청난 양의 전단지들이 배포되곤 한다. 이러한 노력의 취지는 당연히 제품에 관한 정보를 알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조용하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를 알리려는 것이 그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에 대한 중요도의 인식 전환은 이미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브랜드 가치를 놓고 국내의 모기업이 세계적으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이를 파악하고 준비한 기업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건축·건설 분야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에 하나도 역시 브랜드의 등장이라는 점일 것이다. 주거 분야에서 특히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이러한 변화는 레미안, 자이, 푸르지오, 더 샵 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주거 상품들이 브랜드라는 이름 아래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간을 상품화 또는 제품화하여 생산하는 이러한 양상들은 기업의 이름을 앞세우기보다 상품의 브랜딩 전략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거의 OO동 현대 아파트나 주공 아파트 OO단지와 같은 기업의 공신력과 지역성을 중심으로 제품화하는 경우와는 사뭇 다른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제품의 특이성’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각 건설 회사들의 브랜드간 제품의 차별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3사의 제품군과 개별 모델들은 서로 모두 유사한 스펙을 가지고 있지만 제품의 고유한 디자인과 기계적 특화를 통해 기업 브랜드의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품의 이미지와 브랜드의 이미지가 병행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다른 여러 산업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소니의 노트북은 분명 IBM의 노트북과는 기계적 특성과 디자인 특성이 현격하게 다르며, 이는 곧 같은 컴퓨터지만 용도가 차별화되는 것을 주도함으로써 다양함 속에서의 경쟁과 그에 걸맞은 선택이란 명제를 만들어 낸다.
주거공간을 일반 소비자의 상품과 같은 개념으로 인지하는 데에는 적잖은 거부감이 형성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의 산업구조 속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무엇보다 민감하게 움직이는 건축공간들은 특화의 차이는 있으나 분명 ‘상품’임에는 틀림없다. ‘OO사 자동차는 튼튼하나 좀 시끄러워, OO사 차는 가볍고 반응이 빨라’와 같은 상품의 특성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소비자의 적절한 선택을 유도한다는 의미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재의 주거 상품의 특화는 아쉽게도 제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광고에서 나오며 옥탑의 요상한 지붕 모양이나 색채에서 나오는 것이 고작이다. 상품으로서의 주거공간의 특화는 건축의 기본 명제들 가운데 하나인 총체적 공간감이나 사용감과 같은 요소들의 차이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또한 어느 편향된 힘에 의해 주도될 수 없는 것임을 우리가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총체적 공간감의 창출은 훈련받은 건축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며 사용감이나 경제성의 요소들은 상품기획자의 손길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양자간의 협동collaboration은 우리가 현대 산업사회 구조 속에서 공간 상품의 가치를 높이며 제대로 된 브랜드화를 위해 반드시 취하여야 할 기본 덕목이기도 하다.
건축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사고의 상당부분은 너무나 오랜 역사로 인해 단 한번의 검증도 필요치 않을 정도로 우리를 안심(?)시키고 있는 ‘무의식의 신념화’속에서 나오는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신념화를 바탕으로 훈련된 건축가들과 경제원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상품 기획자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로 서로의 영역에 대해 그다지 크게 반응하지 않으며 각자의 영역을 고수해 온 것도 사실이다. 또한 상품 기획자의 소비에 대한 확고한 시각은 때로는 건축가를 매우 무력하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도 현실이다. 주거 상품의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전개되는 대규모의 리서치와 마케팅은 그들에게 통계학적 자료에 근거한 강력한 의사결정 도구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실수요자의 생활 패턴이나 기호를 동배치는 물론 발코니의 형태나 문턱에서부터 도배지나 수전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은 형태와 색깔을 쓰는 것이 어떠한 점에서 유리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으나 명확한 이유가 ‘숫자’로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디자인을 얘기할 때 정량적인 자료보다는 공간적 경험이나 미학적 관점과 같은 정성적인 자료로 대응한다. 분명 정성적인 자료가 가지고 있는 힘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협동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의사소통communication에 있어서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 또는 표상적 객관화 - 숫자가 가질 수 있는 오류가 더 클 수도 있으나 - 가 정성적인 자료를 항상 제압한다는 것이다. 상품 기획자와 건축가 양자간 협동의 원활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점에서 의사소통의 프로토콜protocol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공간적 경험이나 심미성과 같은 정성적 요소의 정량화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단순한 감각이나 취향에 의한 것이 아닌 디자인 테크놀러지design technology로 전환시킴으로써 협업을 위한 의사소통코드의 원활함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량 표준화에서 다품종 소량화로 생산과 상품의 의미가 이미 바뀌어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양자간 협력을 통한 특화된 공간 상품의 개발과 보급에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본다. 그것을 통해 공간 상품의 브랜드화가 가식적인 포장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공간)의 특성으로 주도하게끔 될 것이며, 곧 소비자로 하여금 합리적 선택의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글 / 김찬중(CHAN.SYS DESIGN) c3korea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