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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단상_드로잉과 건축

EiundSüdkartoffel 2014. 5. 22. 05:07

Drawing and Architecture

 

드로잉drawing의 역사는 건축의 발전과 그 역사를 같이한다. 이집트의 벽화에서, 그리스의 부조에서도 드로잉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건축가에게 드로잉은 오래된 우리만의 언어라고 해도 과장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우선 드로잉의 정의를 하자면, 드로잉은 스케치sketch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건축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드로잉과 스케치를 혼용해서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건축가에게 드로잉은 건축적 언어이며 약속이다. 14세기 이태리, 프랭크린 토커Franklin Toker의 산세도니Sansedoni 입면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드로잉과 비교하면 물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스케치와 드로잉의 경계를 보여주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스케일과 비례의 표현을 읽을 수 있고 건축가가 추구하는 건축물의 모습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드로잉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건축가 각자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지 건물을 짓기 위한 도면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건축가의 생각이 담겨 있을 때 우리가 원하는 드로잉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드로잉은 건축공정의 초기과정에서부터 건축물이 지어진 후에도 끊임없이 만들어지며 발전된다.


지난 여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구입했던 「상상의 건축Envisioning Architecture」이라는 책은 드로잉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오토 와그너Otto Wagner, 휴 페리스Hugh Ferris에서부터 닐 디나리Neil Denari, 딜러 & 스코피디오Diller & Scofidio까지 20세기 건축 사상가들의 고민과 갈등을 함께할 수 있었고, 그들의 땀 내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상상 속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들의 작업대에 남겨진 드로잉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유산이자 미래일 것이다.


요즈음, 컴퓨터 드로잉의 편리함에 나 자신도 수작업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마우스를 잡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점점 퇴화되어가는 나의 손과 눈 그리고 머리를 인지하며 새삼스레 놀라곤 한다. 몇 일전, 평창동에서 알바로 시자Alvaro Siza의 전시회 개관식이 있었다. 건축가들의 참석이 많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스케치와 드로잉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알바로 시자의 건축적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발자취를 볼 수 있었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란 말이 생각나는 건축가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요즈음 얼마나 게으르게 건축이란 작업을 대하고 있는지 뒤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건축을 부(副)나 축적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이 땅의 건축인들이 한번은 봤으면 하는 전시회이다. 

나와 드로잉의 관계는 조금 유별나다. 학부시절 나의 드로잉, 스케치 능력은 형편없었다. 대중에게 컴퓨터가 아직 일반화되기 이전이기에 그 영향은 자신감 마저 상실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모형위주의 작업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디자인의 과정도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나름의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했지만, 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자신감을 찾을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이자 목적이었다. 학교 내의 순수미술분야의 수업들을 듣기도 했고, 시간을 내어 미술학원과 화랑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t architecture’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1988년에 있었다. 그 영향은 새로운 건축의 방향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건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사건이였다.

 

그리고 계속되는 해체주의자들의 특강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이어졌다. 톰 메인Thom Mayne,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 등 전시회에 참여했던 모든 작가들은 건축의 새로운 세계를 인도하는 선도자들만 같았다. 본인도 그 물결에 휩싸여 그들의 공개강의를 경청하고 그들의 작품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기계적 건축Machine Architecture’이었다. 오래 전에 르 꼬르뷔제Le Corbusier가 강조한 것이지만 그 당시 뉴욕의 독립건축가들의 드로잉과 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예를 들면 켄 카플랜Ken Kaplan, 테드 크루거Ted Krueger 등이 있었고, ‘빌딩머신Building Machine’이라는 제목으로 조금 바뀌어 불리긴 했지만 기계의 미학을 배우려는 의도는 동일선상에 있었다. 본인 또한 기계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그것의 본질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을 연구하였다.

 

그 외에도 건축과 전쟁, 건축과 음악, 건축의 경계 등 건축의 새로운 접목을 추구하며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이론이 발표되고 사라지곤 하였다. 크로스오버CrossOver라는 말도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타 장르와의 연계를 갈망하였다. 뉴욕의 크고 작은 화랑과 스튜디오에서는 매주 새로운 이론을 만날 수 있었고, 새로운 방법의 드로잉을 목격할 수 있었다. 뉴욕의 각 학교 건축과에서도 매달 공개강의가 있었다. 그 중에는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데리다Jacques Darrida의 만남도 있었다. 무언가 나의, 나만의 것을 찾아야만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는 논문지도교수로 가말 엘 조비Gamal El-Zoghby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일년을 ‘시적인 건축Poetic Architecture’이라는 대주제 아래 소주제로 건축과 언어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문자의 형상화는 그 이후 지금까지 나의 건축공정의 전부이고 또한 명쾌하게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하다. 논문이 진행되면서,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은 시기이기도 했지만, 건축인생의 좌표를 만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드로잉을 그렸고 판화, 유화 등의 재료를 접목하는 실험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나만의 이론을 정립해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아직 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거듭되는 좌절 속에 포기의 순간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해야 했다. 작업실과 도서실을 들락거리며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한 가지의 실마리를 찾아내면 또 다른 곳에서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을 공부해야 했다. 나 자신과의 전쟁이였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믿기지 않게 선생님의 찬사를 받으며 하루의 수업을 마쳤다.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을 넘겼을 때쯤이였다. 단면 드로잉 한 장을 실제 문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고 나의 논문의 방향을 철학적 접근에서 심리학적 접근으로 변경하였다. 나의 생각과 경험이 드로잉과 글에 담겨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마냥 즐거웠고, 논문을 끝내는 것에만 주력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나 자신의 생각과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루이스 칸Louis Kahn이 말하는 ‘조이Joy’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체험하며 작업에 매진하였다. 그 후로 나는 드로잉에 자신감을 얻었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드로잉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책도 출판했었고, 여러 번의 전시회도 가졌다. 뉴욕의 페이퍼 건축가Paper Architect들에게서 영감을 얻어보려고 그들의 흔적을 쫓아 또 몇 년을 보냈다. 그 이후로 페이퍼 건축은 나의 한 부분이 되었다. 아직도 확실한 나의 건축세계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흥분과 감동은 아직도 건축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나는 오늘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상과 현실은 기찻길처럼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만 같고, 지평선처럼 땅과 하늘이 만나는 착시현상일 것만 같다. 나의 이상은 꼬르뷔제의 빌라 사보이Villa Savoy가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편안한 집이었으면 하는 것이고, 헤이덕Hejduck의 월 하우스Wall House가 모든 사람에게 살고 싶은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강요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몇몇 건축가만이라도 건축의 본질을 되새기며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에 충실했으면 한다. 니콜라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는, “자전거창고는 건물이지만, 링컨 대성당은 건축물이다”라고 말했다. 확연하게 어느 것이 건물이고 어느 것이 건축물인지의 구분은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고 원하는 것은 건축물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작은 공간을 설계하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야겠고 거대한 건물을 설계할 때에도 각자의 색깔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그 대상이 5평 규모의 작은 상점이면 어떻고 수만 평 규모의 오피스빌딩이면 어떠한가? 사람을 위한 공간을 계획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그 규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손과 눈 그리고 머리로 만들어내는 드로잉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 또한 나의 경험처럼 힘든 인고의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하지만, 그들이 자신과의 투쟁에서 이겨내고 건축의 진정한 가치를 찾기를 바란다. 또한 사회에서 오늘도 분주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선후배 건축인들도 자신의 가치를 승격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만들 수 있기를…….

 

글 / 박준호 (반디불 환경계획연구소) c3korea 0512